자우림 정규 12집 리뷰 ②

_“단 한 번의 선택이 너를 지옥으로” 자우림 〈My Girl〉의 진짜 의미

이 글은 자우림 정규 12집을
‘파시즘적 폭력을 목격한 개인의 심리 변화’라는 관점에서 읽는 리뷰의 두 번째 글이다.

이번 글에서는 2번 트랙 <My Girl>을 중심으로,
불공정한 현실 앞에서 좌절한 개인이
‘쉬워 보이는 선택’으로서의 파시즘의 유혹에 흔들리는 순간을 다룬다.

※ 이 글은 공동체 라디오 **〈지금 자기는 아까워〉**에서 진행된 방송 내용을 정리한 글이며, 아래 URL을 통해 방송 전체를 들을 수 있다.

▶ 방송 전체 듣기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JZaZGhAwMW4


지금 자우림 정규 12집 〈라이프〉 해석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앨범을 제가 어떻게 보고 있냐면요,
파시즘적인 폭력을 목격한 개인이 파시즘의 유혹과 여러 심리적 변화를 겪는 과정
하나의 테마로 묶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겁니다.
작년 12월에 있었던 사태로부터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까지,
그 시간 동안 자우림 형님들, 누님들이 느꼈을 심리적인 변화가
이 앨범 전반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 감정들을 본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화자를 빌려서 풀어내고 있는 앨범이라고 봤습니다.


이 해석을 잡게 된 계기

이 테마는 사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고요.
제가 신곡 리뷰를 하다가
자우림 멤버들 인터뷰를 보면서 한 구절에 꽂히게 됐습니다.

김윤아 누님이
번아웃 상태에서 음악 작업을 하다가 탄생한 노래들이고,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몸부림치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그리고 자우림의 정서가
이전에는 분노를 관조하는 쪽이었다면,
이번에는 분노를 참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아, 이 앨범을 이렇게 한번 읽어봐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 정규 앨범 열 곡을
하나의 공통 서사를 관통하는 연극으로 보고,
각 트랙을 1막, 2막처럼 나누어 해석하고 있습니다.


1막과 2막의 위치

그래서 1번 트랙 **〈LIFE!〉**는
좌절에 몰려 있는 개인의 상태를 보여주는 곡이라고 말씀을 드렸고요.

오늘 이야기할 두 번째 곡은 **〈My Girl〉**입니다.

쉽게 말하면,
불공정한 현실을 목격하고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개인 앞에
파시즘이라는 ‘쉬워 보이는 선택지’가 등장하는 순간을 다루는 곡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 공정성에 집착하게 되는가

사회적으로 자원이나 분배되는 몫이 부족해질수록
사람들은 공정성에 훨씬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기회가 적어질수록 더 그렇죠.

특히 우리나라처럼
진짜 승자 독식형 경쟁 구도,
1등부터 줄 세워서 대학교 보내고,
1등부터 줄 세워서 이른바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게 만드는 시스템에서는
이 예민함이 극단으로 치닫기 쉽습니다.

혹자는 이런 시스템 덕분에
한국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사회 전체의 성장 동력이 줄어들고
몫을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면,
패자부활전처럼 보일 수 있는 어떤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결과 개인은 고립되고,
버려진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성공과 출세는 곧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환원되고,
그 무한 경쟁이 승자 독식 구조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공정성에 대한 예민함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계속 쌓이다 보면,
나와 갈등하거나 경쟁하고 있는 상대방의 성공조차
불공정한 것으로 인식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왜 파시즘은 ‘쉬운 선택’처럼 보이는가

이런 상황에서 파시즘은
여러 가지 이유로 쉬운 선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는 점입니다.
명확하고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의 혼란을 덜어주는 것처럼 보이죠.

두 번째는,
적대적 대상을 지명해서 설정한다는 점입니다.
내부의 적이나 외부의 위협을 만들어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특정 대상에게 돌리고,
그들을 배제하고 혐오하고 공격하면서
그 집단 내부의 유대감을 강화합니다.

복잡한 가치나 다양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고,
공부할 필요도 없으니까 굉장히 편합니다.

세 번째는,
강력한 리더십과의 일체감을 형성해 준다는 점입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모든 걸 해결해 줄 것 같은 지도자,
일종의 메시아를 기다리게 만들고,
그 집단에 속해 있다는 감각으로
개인의 불안을 해소해 줍니다.

그래서 파시즘은
굉장히 쉬운 선택처럼 보이게 됩니다.


“Run, my girl” — 경고의 목소리

이런 맥락에서 **〈My Girl〉**을 보면,
파시즘의 유혹에 흔들리는 개인에게
강력하게 경고하는 화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야
내가 전부터 아니라고 했지
아직은 달아날 수 있어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Run my girl”

파시즘의 유혹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이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화자가
아직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라고,
도망치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장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선택이
너를 지옥으로 떨어뜨려”

겉보기에는 쉬워 보일지라도,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경고하는 가사입니다.


파시즘의 실체를 드러내는 가사

“그가 바이러스를 주었지
더러워서 죽여버리고 싶어
음침하고 검붉은 입술
비릿하고 흐릿한 두 눈
빤하게 보이는 계산 속에 비굴한 태도
그러나 맥락 없는 분노”

이 가사는
파시즘을 조장하는 ‘그’라는 인물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파괴적인 존재인지를 폭로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건,
공정성에 예민해서 분노하고 있던 개인이
오히려 공정성을 지탱하는 원칙을 무너뜨리는 존재에게
의탁하려는 모순적인 상황
입니다.

이 지점,
뭔가 보이지 않으시나요?


“He would use and abuse you”

“He would use and abuse you
No need to play, no need to stay”

이 가사는
파시즘의 세계가 결코 관대한 곳이 아니라는 점,
그 안에서 ‘My Girl’은
결국 이용당하고 학대받을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합니다.

겉모습과 실제 결과 사이의 불일치를 지적하면서,
지금이라도 그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하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배제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My Girl〉은 특정 인물만을 가리키는 노래가 아니라,
파시즘의 유혹에 취약한
모든 개인, 혹은 그 사회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쉬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선택이 결국 어떤 책임으로,
어떤 화살로 되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2차대전 당시를 떠올려 보면,
혐오의 대상은 계속 옮겨 다니며
결국 자신의 목을 조입니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처음 그들이 왔을 때」라는 글, 유명하죠.

처음에는 공산주의자들이었고,
그다음은 사민당원이었고,
그다음은 또 다른 누군가였던 것처럼,
배제의 언어로 사회를 잘라내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나 자신도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의 입장에서 우리는
어차피 언제든 타자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요.


정리하며

그래서 **〈My Girl〉**은,
누군가를 차별하고 공격하고 혐오하고 배제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를
강하게 경고하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치적으로 어떻고 저렇고를 말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그냥 이런 방식이 너무 만연한,
속 좁고 옹졸한 사회가 되는 게 슬퍼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곡을 만나게 돼서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고도 느꼈습니다.

이상,
자우림 **〈My Girl〉**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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