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개인이 폭력을 반복하지 않기로 한 날_자우림 ‘카르마’ 해설
이 글은 자우림 정규 12집을
**‘파시즘적 폭력을 목격한 개인의 심리 변화’**라는 관점에서 읽는
연속 리뷰의 네 번째 글이다.
이번 글에서는 4번 트랙 **〈Karma〉**를 중심으로,
폭력과 혐오를 목격한 개인이
분노와 유혹의 단계를 지나
자기 내면에 스며든 폭력을 인식하고,
그 순환을 끊기로 결단하는 순간을 다룬다.
※ 이 글은 공동체 라디오 **〈지금 자기는 아까워〉**에서
진행된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글이며,
본문 하단에서 방송 전체를 들을 수 있다.
앞선 세 곡을 통해 이 앨범의 서사는 이렇게 진행돼 왔습니다.
한 개인이
폭력, 혐오, 거짓과 선동,
그리고 그에 경도되어 움직이는 군중의 광기를 목격합니다.
처음에는 분노합니다.
“왜 저러지?”,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지?”
하지만 그 분노는 점점 무기력으로 바뀌고,
개인은 사회 구조 안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지?”라는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됩니다.
〈LIFE!〉는 그 무력감의 고백이었고,
〈My Girl〉은 그 무력한 개인 앞에 놓인
파시즘이라는 ‘쉬워 보이는 선택’과 그에 대한 경고였으며,
〈Vampire〉는 그 유혹이 개인의 내면을 잠식해 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4번 트랙 **〈Karma〉**는
이 모든 흐름을 뒤바꾸는 전환점입니다.
“Shading tears of blood”
곡의 첫 문장부터 강렬합니다.
이 장면을 흔히
가해자에게 상처받은 피해자의 이미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눈물을
타인에게 받은 상처의 눈물이 아니라,
폭력을 목격한 뒤
그 폭력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흘리는 눈물로 읽고 싶었습니다.
뉴스를 보고,
온라인에서 혐오와 폭력을 접하며,
처음에는 분노하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도 누군가를 배척하고
조롱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의 그 공포.
“아, 나도 완전히 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구나.”
〈Karma〉는 바로 그 깨달음에서 시작하는 곡처럼 들립니다.
“Was done can never be undone, not even in death”
표면적으로 보면
가해자에게 선언하는 문장처럼 들립니다.
“네가 한 일은 죽음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이 문장은 동시에
폭력을 목격한 개인 자신에게 향한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한 번 파시즘의 얼굴을 본 사람은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 번 증오를 직면한 사람은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사유가 떠올랐습니다.
아감벤은
폭력을 목격한 자는
그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우슈비츠를 분석하며
그는 ‘말할 수 없는 피해자’와
‘말할 수 있는 생존자’를 구분합니다.
말할 수 없는 자들은 이미 죽었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은
폭력의 세계를 경험해 버렸기 때문에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폭력을 본 순간,
우리는 피해자이든 목격자이든
이미 그 구조 안에 들어가 버린 존재가 됩니다.
“타고 남은 잿더미에 앉아 / 더 이상 나를 탓하지 않아”
이 문장을
단순히 ‘자책을 멈추겠다’로 읽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읽고 싶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무고하지 않다.
나는 이 시대의 일부다.
나는 폭력의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건 양비론이 아닙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선상에 놓는 말도 아닙니다.
폭력의 책임은 명백히 가해자에게 있습니다.
그 책임은 흐려져서는 안 됩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성찰은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뿌리를 정확히 인식해야
그 폭력에 맞서 살아갈 수 있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아감벤이 말하는
‘남은 자(The One Who Remains)’의 자리입니다.
폭력의 시대를 살아남았고,
그 흔적을 안고 있지만
그 폭력을 반복하지 않기로 선택한 존재.
“Karma’s you, Karma following you”
여기서 “너”는 누구일까요?
가해자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너’는
화자 자신의 내면,
증오로 반응하고 싶은 충동,
파시즘적 정동에 휩쓸리고 싶은 감정,
우월감으로 자신의 결핍을 가리고 싶은 욕망입니다.
“카르마가 너를 따라다닌다”는 말은
네 안의 폭력성이
결국 너 자신을 파괴할 것이라는 경고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이 곡에서 화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똑같은 놈이 되기 싫다.
나는 이 순환을 여기서 끊겠다.
이건 패배가 아니라
윤리적 결단입니다.
〈Karma〉가 제시하는 윤리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폭력과 배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보통 두 가지로 수렴합니다.
- 똑같이 증오로 응대하거나
- 무기력하게 침묵하거나
하지만 〈Karma〉는
이 둘을 모두 거부합니다.
아감벤이 말하듯,
진정한 윤리는
폭력을 멈추는 선언이 아니라
폭력을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Karma〉는
그 작은 결단의 기록입니다.
정리하며
이 곡은
외부 가해자에 대한 응보의 노래가 아니라,
폭력과 증오의 시대를 목격한 개인이
자기 안의 폭력성을 인식하고,
그 순환을 끊기로 선택하는 순간을 노래합니다.
폭력을 목격한 개인이
증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이야기.
그게
자우림의 〈Karma〉가 가진 힘이고,
우리가 이 시대에서
한 번쯤 붙잡아야 할 윤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