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목을 꺾은 순간, 죽여야 다시 숨이 트인다_자우림 ‘Let It Die’ 해설
이 글은 자우림 정규 12집을
‘파시즘적 폭력을 목격한 개인의 심리 변화’라는 관점에서 읽는 리뷰의 여섯 번째 글이다.
이번 글에서는 6번 트랙 <Let It Die>를 중심으로,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된 변화가
처음으로 사회와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장되는 순간을 다룬다.
※ 이 글은 공동체 라디오 <지금 자기는 아까워>에서 진행된 방송 내용을
정리한 글이며,
본문 하단에서 방송 전체를 들을 수 있다.
6막 ― 〈Let It Die〉
개인의 결단이 사회의 질문으로 확장되는 순간
이제 여섯 번째 트랙 <Let It Die>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지금까지의 흐름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번 트랙에서는
삶의 막다른 곳에 갇혀 절망하고, 좌절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개인이 등장합니다.
2장과 3장에서는
그 개인을 향해 파시즘의 광기와 폭력, 혐오가
‘쉬운 선택’의 얼굴로 다가옵니다.
4번 트랙 <Karma>에서
화자는 분명한 결단을 내립니다.
증오와 폭력을 반복하지 않겠다.
그 감정이 내 안에서 자라나지 않도록 멈추고 끊어내겠다고.
5번 트랙 <Stars>에서는
상처를 지우지 않은 채,
그 상태 그대로 발견되는 온기와 관계,
그리고 희망의 가능성을 보게 되죠.
여기까지가 개인의 변화입니다.
그런데 <Let It Die>에서는
이 변화가 처음으로 개인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한때는 종교와 같았던 표상들”
가사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때는 종교와 같았던 표상들이
비뚤어진 믿음에 일그러진 철학에”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저는 한 철학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한나 아렌트입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체주의는 완전히 새로운 이념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의미 있었던 가치가 왜곡되고 절대화될 때 발생한다고요.
국민, 공동체, 전통, 안전, 질서.
이런 가치들은 원래 사람들을 연결하던 것이었죠.
하지만 그것이 종교처럼 변하고,
비판 불가능한 믿음이 되는 순간
폭력은 정당화됩니다.
가사 속
‘한때는 종교와 같았던 표상들’은
바로 그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끊어진 채 표류하는 이념들
이어지는 가사에는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끊어진 채로 표류하는 부표처럼”
아렌트는
이념이 현실과 분리되는 상태를 매우 위험한 상태로 보았습니다.
현실을 설명하던 가치가 현실과 단절된 채 떠다니는 순간,
그 가치는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폭력이 됩니다.
여기서 저는
조르조 아감벤의 사유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아감벤은 말하죠.
전체주의의 핵심은 ‘예외 상태의 정상화’라고.
비상사태가 상시화되고,
법이 멈추고,
국가 폭력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태.
이념이 현실과 분리된 채 떠다니고,
예외가 규칙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Let it die” ― 무엇을 죽여야 하는가
그리고 이 곡의 핵심 선언이 등장합니다.
Let it die
Now is the time”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을 죽여야 하는가.
이걸 정리하지 않으면
이 노래는 아주 위험한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파시즘 또한
“낡은 것을 죽이고 새로운 시대를 열자”고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말하는 죽음은 다릅니다.
아렌트적 관점에서 보면
죽여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이념입니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믿음,
절대화되고 종교화된 가치들.
아감벤의 언어로 말하자면
끝내야 할 것은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예외의 논리,
비상 상태를 정상으로 만드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죠.
사람을 제거하라는 게 아니라,
폭력을 가능하게 만든 믿음을 해체하라.
희망이 지속되기 위한 조건
5번 트랙 <Stars>에서
화자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 희망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념이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언제든 다시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이렇게 들립니다.
In reality
The final moment to save the world”
이건 과장이 아닙니다.
폭력의 논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우리가 Stars에서 발견한 인간성, 유대, 희망은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Let It Die〉가 말하는 것
정리하자면
〈Let It Die〉는 복수의 노래가 아닙니다.
이 곡에서 말하는 죽음은
파괴도, 망각도 아닙니다.
이건
아렌트가 말한 전체주의의 뿌리를 제거하는 정치적 행위이자,
아감벤이 말한 비상 상태를 종결시키는 윤리적 결단입니다.
카르마에서 개인은 결단했고,
Stars에서 개인은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Let It Die〉는
그 희망이 현실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선언하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놀라울 정도로 중요하게 들립니다.
이제는 정말,
죽일 것은 사람이 아니라
폭력을 낳은 믿음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