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로 빛나는 저항의 주체, 불의의 시대를 꿰뚫는 검의 이름_자우림 ‘아테나’ 가사 해석
이 글은 자우림 정규 12집을
‘파시즘의 폭력과 그 유혹을 목격한 개인의 심리 변화’라는 관점에서 읽는
해설의 여덟 번째 글이다.
이번 글에서는 8번 트랙 <Athena>를 중심으로,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던 화자가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선언하는 순간,
즉 주체화의 장면을 다룬다.
※ 이 글은 공동체 라디오 <지금 자기는 아까워>에서 진행된 방송 내용을
정리한 글이며,
본문 하단에서 방송 전체를 들을 수 있다.
8막 ― 〈Athena〉
“나의 이름은 아테나”
상처 이후에 태어나는 주체의 선언
자우림 정규 12집을 저는 하나의 극,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는 작품으로 읽고 있습니다.
이 앨범은
파시즘의 폭력과 그 유혹을 목격한 개인이
그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또 파시즘에 경도된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심리적으로 변화해 가는지를 그린 서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각 트랙을 하나의 ‘장’으로 상정해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흐름 정리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 1번 트랙에서 개인은 막다른 절망에 놓입니다.
- 2·3번 트랙에서 폭력과 혐오, 파시즘의 유혹을 목격합니다.
- 4번 트랙에서 상처의 의미를 자각합니다.
- 5번 트랙에서 아주 작은 희망을 회복합니다.
- 6번 트랙에서 낡고 폭력적인 사상을 끝내야 한다고 결단합니다.
- 7번 트랙 <Jugend>에서는
증오의 열기에 눈이 멀어 스스로 파멸로 향하는 군중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이제,
8번 트랙 <Athena>에 도달합니다.
관찰자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 트랙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하나입니다.
화자는 더 이상 관찰자의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화자는 스스로를 이렇게 부릅니다.
나의 이름은 아테나”
이 장면은
영웅의 등장이기보다는,
상처를 견딘 이후에 비로소 태어나는 주체의 선언,
즉 정치적 주체화의 순간으로 읽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7번 트랙에서 우리는
증오에 휩쓸려 생각을 멈춘 군중을 보았습니다.
타인의 언어를 암송하고
분노의 리듬에 몸을 맡긴 사람들 말입니다.
그 어둠의 끝에서,
예상치 못한 빛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Athena>입니다.
“여신이 온다”의 의미
곡은 ‘여신이 온다’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자우림은 여기서
지혜와 전쟁, 정의의 여신 아테나를 호출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신을 외부에서 불러들이는 장면이 아닙니다.
아테나는
화자가 스스로 안에서 깨우는
정치적 주체성의 이름입니다.
2번 트랙 <My Girl>에서
‘mad man’을 경고하던 목소리는
더 이상 주변부의 속삭임이 아니라,
이제 행동하는 저항의 힘으로 변합니다.
절망 이후의 각성
곡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고
별들은 빛을 잃어가네”
5번 트랙 <Stars>에서 되찾았던 희망의 별빛은
다시 가려지고 있습니다.
폭력과 거짓의 시대는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절망이 복수의 감정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화자는 더 냉정해지고,
더 정확하게 현실을 직시합니다.
7번 트랙에서
“진격을 멈추라”고 외쳤던 군중은 멈추지 않았고,
그 종말이 곧 자기 자신의 종말이라는 사실을
화자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트랙에서
화자는 더 이상 경고하는 자가 아니라
직접 싸우는 자로 전환됩니다.
정의와 폭력 사이의 긴장
아테나는 쉽게 영웅 서사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긴장이 존재합니다.
아도르노는 말했습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말하는 순간,
그 말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정의의 검과 방패는
폭력의 논리를 재생산할 위험을 항상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우림의 <Athena>는
그 지점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곡에서 아테나는
폭력을 되갚는 존재가 아니라,
폭력의 순환 자체를 끊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의 구조를 끝내는 선택입니다.
상처에서 태어난 주체
여기서 핵심은 화자의 상처입니다.
아테나는 상처를 지운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상처를 끌어안은 채 싸웁니다.
발터 벤야민은 말했습니다.
“혁명이란 미래를 향한 진보가 아니라
역사의 시간을 멈추는 급브레이크다.”
<Athena>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시간을 멈추고,
폭력의 흐름을 끊기 위해
화자가 나서는 장면입니다.
바디우의 정치철학으로 보자면
이 트랙은 ‘사건’의 순간입니다.
1번부터 7번 트랙까지 축적된
고통과 감정, 목격의 경험이
하나의 순간에 응축되어 폭발합니다.
그리고 화자는
이 사건에 충성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나의 검은 정의”
이 검은
보복의 칼이 아니라
사건을 현실로 만드는 실천입니다.
취약성에서 시작되는 저항
주디스 버틀러는 말합니다.
저항의 힘은 언제나 취약성에서 시작된다고.
아테나의 화자는
강하기 때문에 싸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 피눈물을 흘렸고
- 작은 희망을 발견했고
- 낡은 이념과 결별했고
- 군중의 몰락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 상처와 취약성이
무력감이 아니라
투쟁의 에너지로 전환된 것입니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고통은 삶의 일부이자
성장의 동력입니다.
희망은 상처를 지울 때 생기지 않습니다.
상처를 끌어안고 전진할 때에만
비로소 진짜가 됩니다.
“나의 이름은 아테나”
그래서 이 트랙에서 개인은
마침내 자기 이름을 스스로 부르는 존재로 재탄생합니다.
〈Athena〉는 구원이 아닙니다.
기적도 아닙니다.
이 곡은
불의의 시대 속에서
상처 입은 개인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
동시에 사회를 향해 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주체화의 노래입니다.
1번 트랙부터 이어진
절망과 폭력의 서사는
이 한 문장으로 응축됩니다.
나의 이름은 아테나”
이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아주 조용한 전투 선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