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버티는 자들의 밤, 경계 속의 해방_자우림 ‘바쿠스’ 가사 해설
이 글은 자우림 정규 12집을
‘파시즘의 폭력을 목격한 개인의 심리 변화와 주체화’라는 관점에서 읽는
해설의 아홉 번째 글이다.
이번 글에서는 9번 트랙 <Bacchus>를 중심으로,
8번 트랙 <Athena>에서 결단한 주체가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회복의 시간’,
즉 공동체적 재충전의 장면을 다룬다.
※ 이 글은 공동체 라디오 <지금 자기는 아까워>에서 진행된 방송 내용을
정리한 글이며,
본문 하단에서 방송 전체를 들을 수 있다.
9막 ― 〈Bacchus〉
싸우기 위해, 잠시 웃는 시간
자우림 정규 12집을 저는
하나의 연극,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는 작품으로 읽고 있습니다.
각 트랙은 하나의 ‘장’이며,
이 앨범은 파시즘의 폭력과 유혹을 목격한 개인이
그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어떤 심리적 변화를 거쳐 주체로 형성되어 가는지를 그립니다.
이번에는
아홉 번째 트랙 <Bacchus>입니다.
아테나 이후에 반드시 필요한 장면
8번 트랙 <Athena>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아테나라고 선언합니다.
상처를 끌어안은 채
시대의 폭력과 왜곡에 맞서겠다고
정면으로 나서는 결단의 순간이었죠.
그러나 전투는
한 번의 외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칼을 쥔 손도,
방패를 든 마음도
결국은 지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우림은 뜻밖의 장면을 배치합니다.
바쿠스,
축제와 도취의 신이 등장합니다.
승리의 축제가 아닌, 숨 고르기
처음에는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서사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가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복의 친구
마실 것이 필요해
수상한 잔의 뒷모습이 위험해”
이 장면은 단순한 장난이나 일탈이 아닙니다.
아테나에서 전투에 들어간 화자는
이제 긴장 속의 해방을 경험합니다.
술 한 잔으로 몸은 풀리지만,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승리의 축제가 아니라
투쟁 도중의 숨 고르기로 읽히는 편이 정확합니다.
디오니소스적 순간
니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인 순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질서가 잠시 흔들리고,
삶을 긍정하는 에너지가
다시 회복되는 찰나.
<Bacchus>는 바로
그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웃음의 의미
탁상을 뒤흔드는
요란한 웃음소리”
1번 트랙에서
“나 좀 내버려 둬”라고 외치던
고립된 목소리는
이제 웃음으로 변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웃음이
7번 트랙 <Jugend>에서 보았던
증오의 리듬과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웃음은
건강하고, 따뜻합니다.
바흐친이 말한
카니발의 순간처럼,
권위가 잠시 해체되고
공동체가 다시 구성되는 장면입니다.
진짜 웃음은
권력을 비틀고,
긴장을 풀어냅니다.
자우림은 이 웃음을
투쟁의 일부로 배치합니다.
리듬으로 재구성되는 공동체
잔을 들어라
잔을 비워라
발을 굴러라
박을 맞춰라”
이 반복은
단순히 음악적인 리듬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리듬이기도 합니다.
아테나가
정밀한 결단의 장면이었다면,
바쿠스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공동체의 리듬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언어를 빌리자면,
8번 트랙에서 구축된
정치적 주체로서의 ‘아테나’는
9번 트랙에서
잠시 해체되고,
다시 조립됩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몸에 순환시키는 장면입니다.
경계는 유지된다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하는 장면은 아닙니다.
수상한 잔의 뒷모습이 위험해”
자우림은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을 남깁니다.
해방의 순간에도 경계는 필요하다.
파시즘의 잔재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7번 트랙에서 보았던
눈먼 군중의 위험은
이 파티의 장면에서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바쿠스는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투쟁을 지속하기 위한 재충전의 의례입니다.
기쁨은 사치가 아니다
아렌트식으로 말하자면,
이 장면은
억압의 시대에
사람들이 다시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공동체적 공간을 구성하는 순간입니다.
자우림은 말합니다.
기쁨은 사치가 아니라
투쟁의 자원이다.”
8장에서의 결단이
장기전이 될 것을 알고 있기에,
9장의 화자는
웃음과 공동체 속에서
다시 힘을 끌어올립니다.
아테나와 바쿠스의 관계
이 점이 중요합니다.
- 아테나는 개인의 결단입니다.
- 바쿠스는 공동체의 회복입니다.
둘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보완합니다.
이 곡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
하지만 웃어야
끝까지 싸울 수 있다.”
분노만 쌓이면
우리는 다시
유겐트의 군중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해방의 의례가 필요합니다.
10번 트랙을 향해
아테나는 전투의 이름이고,
바쿠스는 회복과 재생산의 이름입니다.
이 둘의 균형이 있을 때만
우리는
마지막 트랙 <Coal Tar Heart>를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프로젝트의 대단원으로
향해 가 보겠습니다.